[법륜스님]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져요, 어떡하죠?
“저의 가장 큰 고민은 모든 게 허무하다는 거예요.
제가 살아가는 게 약간 환상 같고, 뭔가 채우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고, 허무한 느낌이 듭니다.
활력도 없어지고, 열정도 없어졌어요.
이런 생각이 들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허무한 마음을 없앨 수 있나요?”
“질문자의 앞길이 어떻게 될지 훤히 보이네요.” (웃음)
“어떤 앞길이 보이세요?”
“그런 생각을 자꾸 하면 앞길은 자살하는 것밖에 없어요. 결국 종착역은 자살입니다. ‘살아서 뭐 하냐? 죽는 게 낫겠다’ 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고속도로에 지금 올라탄 거예요.
‘결혼하면 뭐 하나? 그래봐야 애 낳고 살다가 결국 죽는 것 아닌가?’
‘돈 벌고 큰 집 사면 뭐 하나? 결국 죽을 것 아니냐?’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지구도 하나의 티끌에 불과한데
그런 티끌 같은 곳에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들 겁니다. 그런 의문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면
괴로움이 없는 길로 가는 건데,
질문자처럼 그런 생각이 자꾸 허무하게만 느껴지면 ‘경쟁할 필요도 없네’,
‘결혼할 필요도 없네’, ‘결혼도 안 해도 되네. 결국 죽을 건데’
이렇게 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살아서 뭐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 마치 불교를 좀 아는 사람 같고,
도를 깨달은 사람 같지만, 그 종착역은 죽음이에요.
어차피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또 이렇게 말할 거예요.
‘너도 죽고 나도 죽는데, 빨리 죽으나 늦게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나?
하루살이가 저녁 10시에 죽으나, 오후 4시에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나?
스님도 그렇게 법문을 하던데 사람도 나이 40에 죽으나 80에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나?’
질문자는 모든 법문도 다 죽음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해석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죽음의 대열에 올라섰다고 표현했던 겁니다.
법문을 들어도, 우주 공부를 해도,
뭘 해도 종착역은 죽는 걸로 딱 결론이 나는 길에 들어섰어요.
매우 위험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무도 자라서 뭐해요?
어차피 사람이 베어갈 것인데요. 닭이나 소도 살아서 뭐해요? 어차피 사람이 잡아먹을 건데요. 이런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에 만물이 생존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예요.
이런 생각은 반생명적 사고방식입니다. 컴퓨터도 병이 들면 백신 치료를 해야 하듯이 질문자는 지금 정신적인 병이 든 거예요. 지금 이런 병이 현대인들에게 전염되다시피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의 자살률이 가장 높잖아요. 가난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학대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살률이 높은 게 아니에요. 가난한 나라나 독재 국가의 자살률이 많은 게 아니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자살률이 높습니다.
자살은 대부분 정신적인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경쟁의 압박이 높아서 자살한다’, ‘너무 빈부 격차가 심해서 자살한다’, ‘가정폭력에 의해서 자살한다’, ‘왕따를 시켜서 자살한다’ 이렇게 말하는데 이것은 그때 그때 자살을 할 때의 상황을 말하는 겁니다. 상황을 갖고 얘기하면 전부 외부에서 오는 문제인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왕따를 시킨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두드려 맞는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파산한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이혼을 하거나 연애에 실패한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닙니다. 슬픔이 확 올라오거나 어떤 허무감이 들 때 ‘차라리 목숨을 끊는 게 더 낫겠다’ 하고 죽음을 합리화하는 사유 체계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 사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병이 들었다는 반증입니다.
대부분의 생명은 어떤 악조건에 놓여도 살려고 합니다. 새싹이 막 올라올 때 그 위에 돌을 덮어놓으면 못 이겨서 죽을 때도 있지만 옆으로 삐져서 올라오는 게 생명입니다. 모든 자연은 어떻게든 살려고 해요. 굶어 죽을 상황에 놓이면 훔쳐 먹고라도 살려고 하고, 학대를 받아도 살려고 해요. 질문자처럼 생각하면 옛날 노예들도 다 죽어버렸지 무엇 때문에 살았겠습니까?
질문자는 삶에 대해서 너무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10살짜리 아이도 있고, 남편도 있습니다...”
“병인 줄 알고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뭘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건 맞아요. 그 부분은 질문자와 스님의 생각이 같습니다. 그런데 차이는 결론이 다르다는 겁니다. 질문자는 그래서 죽겠다는 것이고, 스님은 그래서 죽을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뭘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오히려 사는데 힘이 하나도 안 듭니다. 아이가 공부를 꼴등 하면 어때요? 1등 해도 죽고, 꼴등을 해도 죽는데요. 아이가 공부를 잘 하든 못하든 내버려 두고 나는 나대로 살면 됩니다. 훨씬 자유롭게 살 수 있는데, 질문자는 그러니까 죽어야 된다고 결론이 나거든요. 그래서 제가 병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치료를 받아볼게요.”
“질문자의 사유는 아주 훌륭해요. 마치 깨달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사유가 훌륭합니다. 단지 그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살아서 뭐 하냐’ 이렇게 결론이 나는 게 문제입니다. 스님은 ‘그러니까 웃으면서 살아야지’ 이렇게 결론이 나거든요. 반대로 질문자는 ‘그러니까 죽어야지’ 이렇게 결론이 난다는 겁니다. 해결책은 한 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그러니 괴로울 일이 없네. 이제 편하면 살면 되네. 죽을 때가 되면 알아서 죽을 거니까 일부러 죽을 필요가 없구나’
이렇게 생각을 한 번 바꿔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살다 보면 온갖 사람이 다 있죠. 제 얘기를 듣고 ‘스님은 죽겠다는 사람한테 말을 너무 쉽게 하네요’ 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죽겠다는 사람 하고도 우리는 웃으면서 대화를 해야 하는 거예요. 죽을 때 죽더라도 하루라도 웃어야죠.
불교를 잘못 공부하면 결론이 허무주의에 빠질 위험이 높습니다. ‘제법이 공한데 살아서 뭐 하나’ 이런 생각을 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잘못 깨달으면 죽어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삶에 대해 의미를 너무 많이 부여하기 때문에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겁니다.
풀 한 포기 나는 것이나, 나무 한 그루 자라는 것이나, 토끼 한 마리 뛰어다니는 것이나, 한 사람이 사는 것이나 모두 똑같아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죽을 필요도 없고, 억지로 살려고 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인연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네. 저는 사람이 죽지 않는 이유가 책임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스님이 순리에 역행하는 생각이라고 하신 말씀이 크게 와닿았어요. 제가 오만한 생각을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질문자가 인생에 대해 너무 높은 환상을 갖고 있어서 그래요.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꼭 유명한 배우가 되어야 인생이 살 만한가요? 꼭 부자가 되어야 인생이 살 만한가요?
인생을 사는 이유를 알아야 된다고 자꾸 생각하는데, 사는 데는 이유가 없어요. 그냥 사는 겁니다. 이유가 없는데 이유를 찾기 때문에 결론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거예요. 이유가 있기 이전에 존재가 먼저입니다. 우리는 이미 살고 있고, 그다음에 생각을 하는 겁니다. 생각을 해서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은 자연에 역행하는 거예요. 내가 살아있으니까 생각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출처-법륜스님의 즉문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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